엘런 튜링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이자 수학 천재 1912.06.23 ~ 1954.06.07

출생 및 어린시절
앨런은 1912년 6월 23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앨런을 영국령 식민지 인도에서 낳았지만 자식만큼은 영국에서 키우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와 낳았다.

튜링은 어릴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말을 더듬고 영어와 라틴어를 몹시 싫어하며 평생을 맞춤법과 글쓰기로 고생한 외곬의 괴짜였다.
그러나 수학에서 만큼은 두각을 보였으며 미적분에 대한 기초 지식도 없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고, 이해하기 난해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운동법칙을 혼자서 추출해내기도 했다.

15살 때는 수학에 뛰어난 친구 크리스토퍼 모컴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 둘은 매우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기로 결심했으나 2년 뒤 모컴이 결핵으로 죽게된다.
튜링은 이 일을 계기로 인간의 지능을 기계에 넣어두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 진학 그리고 튜링 기계 개발
튜링은 18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하여 수학을 전공한다.
1935년부터는 대학원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러 논문들을 발표하게 된다.
그 중 튜링 기계라 불리는 가상 연산기계에 대해 발표하게 되는데 그 논문에는 읽기, 쓰기, 제어 장치 이 세 개만 있으면 모든 계산 가능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오늘날의 컴퓨터를 보면 신기하게도 튜링의 튜링기계와 매우 닮아 있다. 튜링기계의 테이프는 메모리로, 테이프에 읽고 쓰는 것은 입출력 장치로, 작동 규칙표는 중앙처리장치로 발전했다.
이후 튜링은 1938년 튜링기계를 발전시긴 하이퍼계산에 관한 연구를 통해 박사 학위를 받는다.



암호학교와 에그니마
튜링은 세계 2차대전의 시발점인 1939년 9월 영국의 전쟁 발발 하루만에 런던 북쪽의 '정부 암호학교' 수학팀장으로 스카웃된다.
독일은 전쟁에서 작전이 도청이나 스파이에 의해서 유출되지 않기 위해 '에그니마라'는 암호화 기계를 만들게 된다.
에그니마는 타자기처럼 생긴 기계로 타이핑을 치면 기계 내부에서 수학적으로 개발된 회로에 의해 암호화된 다른 철자가 타이핑되어 나오는 방식이었다.
또한 회로가 매일 바뀌었기 때문에 암호화 방법을 24시간이내에 풀어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었다.

튜링은 암호 해독 방법을 알아내는 일에 매진하였고 암호를 푸든데에만 몇 달이 걸렸다.
그러다 침몰한 독일 잠수함에서 암호책이 입수되면서 그것을 토대로 수많은 암호 계산기를 만들게 된다.
1940년 튜링이 고안한 '붐베' 암호 계산기가 발명되었는데 이전의 암호 계산 속도보다 현저히 빨라지게 되었다.

이후 튜링의 암호해독반이 암호를 풀어내는 기술은 급격히 발전하여 나중에는 몇 분만에 암호 해독이 가능했다.


튜링 테스트
전쟁 후 튜링은 국립물리학 연구소에서 컴퓨터 개발 팀장으로 일하다 1948년 맨체스터 대학의 컴퓨터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의 관심은 인공지능에 있었고 1950년 한가지 실험을 제안하게 된다.
'튜링테스트' 라는 실험인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서로 보이지 않는 방 세 개가 있다. 이중 두 방에는 사람 한 명씩 넣고 다른 한 방에는 컴퓨터를 넣어준다.
그 중 한 명이 나머지 두 방(사람방, 컴퓨터방) 에 채팅 형식으로 질문을 보낸다.
두 방에서는 답변이 오게 되고 질문을 한 참가자가 둘 중 누가 컴퓨터고 누가 인간인지 가려낼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사고하는 컴퓨터'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은 그 당시에는 이러한 컴퓨터를 만드는것은 불가능 하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2000년까지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컴퓨터가 나올것이라 예언했다.


독이 든 사과 애플 로고의 전설?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19세 청년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범죄 집단과 어울리는 나쁜 청년이었고, 튜링이 주말에 외출한 사이에 집을 털어가 버렸다.
즉시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청년과의 관계를 물었다. 튜링은 순진하게 자신과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말해버렸고 동성애자라는 사실 또한 들키게 되었다.
튜링은 성문란 혐의로 고소당했고 법원에서 화학적 거세를 선고받게 된다. 또한 컴퓨터 연구소 부소장직에서도 해임된다.

튜링은 1년간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며 집에서만 틀어박혀 지냈고 반년이 지난 1954년 6월 41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튜링은 디즈니의 백설공주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사과에 독약을 주사하고 독이 든 사과를 깨물어 죽었다.

미국 계산기학회에서는 1966년부터 튜링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는 튜링상을 수여한다.
애플의 로고또한 튜링을 추모하는 의미일 것이라는 전설? 이 전해지지만 이는 애플사의 공식적인 부인을 통해 아니라는것이 밝혀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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